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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예술은 과거를 내려놓는 것"

10월 17일
3분 분량

엄마는 여느 날 낮처럼 전화를 해서는 대뜸 자신이 아프다 했다. 나는 마치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별일 아닌 듯 담담히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차분해진 채로 통화를 끝맺은 건 다행이었지만, 나는 읽고 있던 책의 문장에 눈만 두고 자꾸만 생각이 많아져 머지않아 덮었다.


며칠 뒤 수술 날짜가 잡혔다. 엄마와 나는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병실 의자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시답지 않은 대화들을 이어갔다. 병실의 다른 사람들과 크게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것이 괜한 거짓말인 것을 알았고, 왜 그렇게 자꾸 놀러만 다니냐는 얕은 핀잔을 들었다. 대화 거리가 흐려져 갈 무렵,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실이 준비가 되어서 내려갈 시간이니 이제 준비를 하라고 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엄마는 휠체어에 앉혀졌다. 아무래도 일부러 늘 입가에 미소를 짓고 계신 듯한 직원분이 휠체어를 밀어주셨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사이, 불필요하게 나의 반대편으로 돌아간 엄마의 고개를 보며 그가 울고 있음을 짐작했다. 짐작만 했던 얼굴을 마주했던 건 수술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였다. 말 그대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눈을 피하고 싶지도 않았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는 꾹 참으며 그 눈을 마주 보기만 했다. 보호자 안내문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는 직원분의 말을, 어쩌면 냉담해 보일지 모르는 태도로 들었다. 하나를 감추려 하면 그 하나 이상의 것들이 부자연스러워진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모니터에 띄워진 엄마의 이름, 나이, 수술 대기 중이라는 상태를 숨 고르듯 잠시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억지로 누르고 있던 감정은 뒤를 돌아서야 새어 나왔다.


몇 시간이 흘러 다시 병실에서 수술을 마치고 나온 엄마를 만났다. 몽롱한 상태로 누워 아프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다가, 마취가 깨니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의 자신의 모습이 바보 같다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간호사들의 키가 너의 앉은키라며 장난스러운 흉을 보길래 원래 그의 모습 같아서 마음을 조금 놓았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은 쉽게 자리에 앉지 못하고 한참 주위를 맴돌다가, 이제는 귀가하셔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번씩 그에게 전화하고, 한 번씩 그를 보러 간다. 병원에 찾아간 어느 하루에는 병원에서 느꼈던 이런저런 불만을 나에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병원에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 이에 대해 이야기했고, 필요하다면 더 이야기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불만과 요구 사항은 꽤 정당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피곤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감정과 행동에 선뜻 공감해 주지 않아서인지, 그는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지 않냐며 더 열을 올렸다. 병원으로 향할 때와 다르게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돌아와서도 마음은 시끄러웠다. 시끄러운 마음은 엄마와 있었던 과거의 여러 기억들을 덩달아 소환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행동들, 괴로운 마음으로 감히 그를 바꿔보려 했던 부질없던 노력들, 엄마와 나 사이에 쌓여있는 수 십 년의 시간만큼 묵혀있는 기억들. 그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불과 며칠 전과는 다르게 나는 다시 과거처럼 엄마를 바라보고 기억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났다. 얼굴도 목소리도 잠시 거리를 두던 사이에도 나는 그의 지난 말들을 때때로 곱씹었다. 여러 감정들과 엉켜가던 마음을 조금씩 누그러뜨린 건 시간이었다. 엄마는 지금 달리 위로받고 터놓을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 일부러 자신의 상황을 알리지 않은 엄마였다. 그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서 위로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상황을 실컷 이야기하고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그럴만한 상황에 놓여버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여느 날 느닷없는 전화를 받았던 그날부터 나는 마음이 조금은 약해졌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 고양이를 돌보다가 뜬금없이 눈물이 났고, 별일 없냐는 물음에 올라오려던 감정을 꾹 참았다. 그럴 때면 깨닫는다. 나는 엄마를 미워할 수 없다. 그를 향한 지배적인 감정은 미움일 수 없다.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고 지금의 모습으로만 엄마를 바라보고 싶다. 아무래도 부단히 애를 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와 내가 보냈던 과거의 시간 말고 남아있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숙제이자 기회일 것이다. 어쩌면 선물일 것이다.




"최고의 예술은 과거를 내려놓는 것" (에크하르트 톨레, 『NOW』)
"최고의 예술은 과거를 내려놓는 것" (에크하르트 톨레,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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