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숙제
- 7월 14일
- 2분 분량
"너는 개띠가 아니고 닭띠야, 그리고 7살이 아니라 8살이야, 알았지?"
나의 무언가를 숨기는 연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까. 엄마는 일 년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나를 앞에 세워두고 신신당부를 하곤 했다. 때로는 이모들까지 합세해서였다. 엄마와 이모들은 나의 무언가를 숨기도록 연습시키는 일이 나름 재밌었는지 자기들끼리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어린 나에겐 의문투성이인 일이었다. 왜 나의 태어난 연도와 나이를 숨겨야 하며, 친구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미리 연습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 연습의 바탕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혹여나 나이가 한 살 어리다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거나 따돌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우려 섞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나는 상대에게 한 번 뱉은 말이었지만, 그 상대는 평생에 걸쳐 자주 들어왔을 말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말들이 있다. 생일이 3월인데 어떻게 빠른이에요? 나한테 키 5cm만 나눠줄래? 원래 말이 없고 좀 조용한 편이에요? 대부분은 그냥 웃고 넘길 말들이지만, 나를 자꾸만 돌아보게 하는 말이 있다. 나의 속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때로는 서운함이 섞여있는 말들. 이전보다 빈도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한 번씩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아직 그 자리 근처를 맴돌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 집은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는 집이 아니었다.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감정적 공감을 해주거나, 그럴 수 있지라는 이해의 말을 해줬던 기억이 없다. 엄마는 자신이 바라는 방향과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가차 없이 속상한 말들을 내뱉곤 했다. 우리 사이의 대화의 공백을 그렇게라도 채웠어야 했던 걸까. 차라리 빈 여백으로 남겨두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가족의 품이라는 두 단어의 결합이 나에겐 낯설다. 가족 안에서 나 자신이 온전히 이해받은 경험이 없는 자는, 품이라는 단어의 온기를 다른 어느 곳에서 더듬거리며 찾게 된다. 소심하게 쭈뼛거리며 이곳저곳을 헤매다 도착한 곳은 결국 나 자신인 경우가 많았다. 기댈 곳은 없어 서늘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전한 그곳에서, 그렇게 나는 더 안으로, 깊게, 숨었고 숨겼다.
아픔을 그리고 나 자신을 타인에게 오롯이 드러내고 이해받은 경험이 흐릿했던 나에게 필요한 건 연습이었다.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하며 숨으려 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있음이 속상했지만, 나에게 시간을 조금 더 넉넉히 주어보기로 했다. 이 과정을 '평생의 숙제'로 나름의 이름 붙이면서. 그렇게 부지런히 연습을 한다. 마주앉은 사람에게 나의 부족한 모습을 이야기하고,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부분을 꺼내 보이면서, 오래 묵은 습관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작게나마 시도해 본다. 취약해지는 것이 더 나아지는 길이라는 걸 마음에 새긴다.
"One becomes the other."
인요가 지도자 과정을 온라인으로 듣고 있다. 뼈와 근육을 연결해 주는 힘줄(tendon)이라는 신체 부위에 대해 배우던 중이었다. 우리의 몸이 이 부분까지는 뼈,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힘줄, 그다음은 근육. 이렇게 칼로 딱 자르듯이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는다고 했다. 비슷한 예시로 함께 들려준 것이 무지개였다. 빨강이 주황이 되고, 주황이 노랑이 되는 그 경계를 우리가 명확히 구분할 수 없듯이, 하나가 점차 다른 것이 되어가는 거라고. 연결, 그리고 과정.
다른 내가 되어가는 과정을 인내한다. 반복하고 때로는 잠시 연민한다. 누군가를 오래 관찰하게 되면 그가 자주 쓰던,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던 단어들이 어느샌가 흐려진 걸 느낄 때가 있다. 상대의 긍정적인 변화를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것이 가능할 만큼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기뻐서 상대에게 내가 너의 이런 모습을 보았노라고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혹여나 상대가 여러 생각을 하게끔 하는 말이 될까봐 조용히 말을 아낀다. 혼자만의 애정어린 삼킴이다. 누군가 나의 변화를 알아채줄 수 있다면 좋겠다. 목구멍에서 삼킬 뻔한 말을 뱉어내는 나를, 습관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나를, 평생의 숙제를 긴 시간 풀어나가고 있는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서로를 면밀히, 오랜 시간, 애정으로, 살펴보는, 그 여러 가지가 충족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땅히 그렇게 곁에 머물고 싶은 존재가 되는 게 먼저겠다.

The line, ‘Each of us is here to work through our own lifelong lessons,’ deeply resonated with me and gave me the courage and strength I needed. Thank you so much for sharing these meaningful words. I’m truly grate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