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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8월 4일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13일


얼마 전, 살면서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냐는 물음을 받았다. 늘 떠오르는 시기가 있다. 쉬고 싶었으나 쉴 수 없었고, 별다른 즐거움도, 추구하는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나와는 정반대인 것 같은 사람들도 둘러싸여 있던 환경은 우울감을 한층 더해주기에 적합했다.


이런 시기를 고백하자, 고등학생 때가 가장 그랬을 것 같은데 아니냐는 질문을 다시 받았다. 잠시 돌이켜봐도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할 거라곤, 아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일 밖에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선택지가 없는 삶은 오히려 단순해지고, 단순해지는 건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낸다. 남는 건 단순하고 묵묵하게 살아가는 일 뿐.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때의 공부가 크게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시험의 점수가 오르는 등의 변화가 때때로 즐겁기는 했지만, 어떤 공부를 할지까지 스스로 정할 수는 없었다. 설령 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쉽사리 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알기에는 경험이 턱없이 적은 나이였고, 나는 나를 그만큼 잘 알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 흥미롭게 배우던 과목은 영어였다. 익숙한 모국어가 아닌 생소한 언어의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니 하나의 문장을 해석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그 무엇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던 10대의 나는 뭐라도 하나 골라야 하는 마음으로 영문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전공 공부라는 게 재밌을 리는 없었다. 공부와 재미는 내 인생에서 오랫동안 꽤 먼 거리를 유지했다.


발리에서의 세 번째 밤 쯤이었을까. 뜨거운 햇빛 아래 한참을 돌아다니다 숙소에 돌아와 누워 쉬고 있었다. 한두 시간을 쉬다가 해가 지고 밤 산책을 나왔다. 한 카페에 들러 피콜로 한 잔을 주문했다. 잠시 후 커피가 나왔는데 커피 위에 귀여운 오리가 그려진 멋진 라떼 아트가 있었다. 이 오리를 커피 위에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던 나는 오리가 사라지는 걸 아까워 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던 찰나, 커피를 만들어준 직원이 와서 커피는 어떤지 친절하게 물었다. 나는 너무 맛있다고 답했고, 그녀는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는데 아마 한국 사람임을 짐작하고 물은 질문인 듯 했다.


그 후로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내가 더 신나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윤아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내 이름을 이야기해주었고, 악동뮤지션을 좋아한다는 말에 나도 최근에 나온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의 능숙한 한국어에 대해 물어보니, 유튜브를 보며 혼자 공부했다고 했다. 음, 저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라며 수줍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커피는 또 어떻게 이렇게 잘 하는지 묻자,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것 역시 음, 공부했어요 라며 수줍음으로 이야기한다. 공부한다는 말이 그렇게 예쁘고 순수하게 들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걸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혼자 시간을 들여 익혀나가는, 그의 시간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아무래도 지난 나의 공부와 그의 공부는 조금 다른 듯 했다. 윤아 씨라고 그녀를 부르며 작별 인사를 했고, 혼자 공부한다는 그의 말이 나의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 취업, 결혼, 육아 등 줄줄이 이어지는 소위 인생의 퀘스트들을 그래도 몇 가지는 완료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삶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모양을 갖춘 듯하다가도,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에 따라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흐릿했던 어린 시절보다 이제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으니, 나에게 맞는 모양으로 삶을 잘 빚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을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더 알아가고 공부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어졌다. 누가 나한테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책 읽기, 하나는 요가. 요즘은 요가를 공부한다. 이제는 재미와 공부가 조금은 가까워졌다.


인요가 지도자 수업을 들으며 생전 처음 듣는 뼈의 이름과 근육의 위치 등은 낯설지만 재밌다. 수업을 언제까지 다 듣겠다는 혼자만의 마감일은 지워졌다 새로 써지기를 자꾸 반복하고 있다. 매일 새로 시작하는 듯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추구하고 목표로 하게 되면, 거기에 정확히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근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게 된다. 매일 쓰고 지우는 나를 보채는 일에는 조금 게을러지려 한다. 몰입하고 알아가고 쌓아나가고 싶은 것이 있다는 기쁜 마음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다가오는 삶의 모양이 왠지 마음에 들 것 같은 기분이다.




Yin Yoga Teacher Training Course with Bernie C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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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wong
8월 04일

Looking back, I don't think all the people you've met during your travels were just coincidences. You seem to have a light that naturally attracts kind, beautiful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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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
8월 05일
답글 상대:

So sweet to hear that, especially coming from you. I’m one of the people who’ve been drawn to your lovely, warm l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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